STOVE 스토어

플레이 후기
이모밥줘잉
24.04.1924.04.19 08:02 -00:00
0 °C
5분 플레이
영차 영차
스토브9700
24.04.1824.04.18 05:05 -00:00
350 °C
총 5000원 상당인데 까목지말고잘챙기세요
배두나
24.04.1824.04.18 14:33 -00:00


Sojeob
24.04.1824.04.18 10:29 -00:00


CHRONOARK
24.04.1924.04.19 07:20 -00:00
600 °C
험블서 번들떳을때 못질러서 아까웠었는데 이럭케 풀릴줄은ㅋㅋㅋㅋ대박
덤비면문다고
23시간 전24.04.19 12:00 -00:00

와 이거 명작이죠.


리즈의리즈시절
7시간 전24.04.20 04:07 -00:00


오믈렛은마시따
4시간 전24.04.20 07:31 -00:00
571 °C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진짜 천지 차이구나칠라스 아트 게임이라든지 공용 리소스를 사용한 소위 똥포겜, 공포 쯔꾸르 영상을 꽤 많이 봐서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말이죠요번 슬데 게임을 낮에 했는데도 무서워서 죽는 줄최근 유행한 다른 점 찾기, 이상 현상을 찾는 방식의 곰보 게임으로 아무도 없는 어두운 복도의 분위기가 장난 없네요단순히 분위기만으로 압도하는 것 외에도 가끔 점프 스케어도 있고... 진단 결과 저는 심각한 쫄보였습니다
리즈의리즈시절
1시간 전24.04.20 09:53 -00:00


촉촉한감자칩
3시간 전24.04.20 08:36 -00:00

공포는 안해서.... ㅋㅋㅋㅋㅋ스트리머 플레이 영상조차 안 봅니다 ㅋㅋㅋ



킹갓제너럴엠페러마제스티골져스썬더다람쥐
24.04.1924.04.19 02:27 -00:00
114 °C
혹시, 사쿠라 노벨 시리즈 하신분 계실까요????입문자용 추천 하나 부탁드립니다!!
킹갓제너럴엠페러마제스티골져스썬더다람쥐
24.04.1924.04.19 02:28 -00:00
작성자


오믈렛은마시따
6시간 전24.04.20 05:00 -00:00
230 °C
FLOWERS 시리즈의 첫 작품 『FLOWERS -Le volume sur printemps-』가 2014년 4월 18일에 나온 지도 어언 10년시리즈의 10주년을 기념하여 오케스트라 공연을 개최한다는 소식이 올라왔습니다FLOWERS 10주년 기념일오케스트라 공연 「Memoire eternelle」http://www.gungnir.co.jp/lily/Memoire_eternelle/2025년 4월 11일도쿄 오페라 시티 콘서트 홀(대충 오페라 시티 홈페이지 링크)음악 : MANYO지휘/편곡 : 이와다레 노리유키연주 : gaQdan출연진 : 시모츠키 하루카, 스즈유, 나즈카 카오리(시라하네 스오우 역), 오카모토 리에(코우사카 마유리, 시온 바스키아 역)글은 10주년 음악회를 개최하게 되었으며, 최고의 음악을 선사하겠다는 이야기이고「Memoire eternelle」는 프랑스어로 "영원한 기억"을 뜻한다고 합니다그림에 그려진 꽃은 〈헬리크리섬 코르마〉, 꽃말은 「영원한 추억」과 「기억」이라고 하네요실물은 요렇게 생긴 꽃출연진에 시모츠키 하루카 님과 스즈유 님이 계신 거로 보아 구성 중에 보컬곡도 있을 듯하고,성우진 중에서는 시리즈의 메인 주인공인 스오우와 그 짝인 마유리가 출연하네요그 외에 눈에 띄는 건 편곡의 이와다레 노리유키 님. 구글에 검색하니 프로필이 뜨길래 좀 더 조사해보니 어마어마하신 분이네요명작으로 유명한 랑그릿사 시리즈, 역전재판 시리즈 일부의 OST를 작곡하신 거물 (꺼라위키 링크)하지만 어차피 못 듣는다는 것... 카라노쇼죠 시리즈 완결 기념 화전 「백야」 때처럼 구쭈나 직구로 사야지이미지 로고 버전이미지 로고 없는 버전
5
덤비면문다고
5시간 전24.04.20 06:30 -00:00

게임의 인지도를 잘 모르는 편인데 일본 내에서도 인기가 있는 타이틀인가 보네요 음악회까지 열 정도면.

좀 흥미가 생기는 군요.


Chim
5시간 전24.04.20 06:12 -00:00


플레이 후기
hashiruka48
24.04.1824.04.18 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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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옷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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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lity1011
24.04.1824.04.18 12:32 -00:00
282 °C
9회에 이렇게 힘들 줄이야...
Chim
24.04.1824.04.18 12:34 -00:00


Sojeob
24.04.1924.04.19 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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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VE40157233
24.01.1324.01.13 13:55 -00:00
901 °C
최근에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을 읽는 중입니다.

소셜임팩트챌린지를 위한 아무말용입니다.


최근 10년 이상 역사책은 읽지 않은 것 같은데  기억 되새김하는 겸 흥미로운 내용들을 적어봤습니다. 책을 절반 정도 밖에 안 봤고 기억으로 쓰는 거라 세부 사항이 부족하거나 틀릴 수 있습니다. 물론 역사학도도 아니고 교차검증도 없습니다.


(추가1) 다시 말하지만, 아직 절반 밖에 못 봤고, 제가 제대로 이해 못하거나 잘못 기억하거나 잘못 쓰거나 저자가 틀렸을 가능성도 버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것들을 적은 것이지 논리 구조 같은 게 다 적힌 게 아닙니다

<일본인 학자, 한국의 뉴라이트를 겨누다>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292121)

흥미가 생기면 위 링크의 논평?도 읽어보는게 어떨까요.



1. 신고 미비로 인한 토지 수탈은 없었다.

  옛날에 배우던 거랑 좀 다른데? 싶어서 나무위키에도 검색해보니 나옵니다. 1980년대에 발견된 토지대장에서 99.5%의 토지 소유권이 조선인의 신고대로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어 포함해서 사전조사도 하고 신고 절차를 몇 번이나 알려줬다더군요.


아.. 국사쌤.. 업데이트가 제대로 안되셨구나..



2. 쌀의 이동은  수탈보다는 경제적 거래였고 <(추가2) 농민에 대한 수탈에는> 모노컬처(단일작물)+수리시설 공사의 문제가 있었다.

   산미증식계획 탓에 쌀 위주로 생산하게 되고 쌀의 높은 생산량(공급 과다?)으로 가격이 낮아서 농민이 돈 벌기 힘들었다군요. 과일 같은 걸로 인원이 빠져줘야 공급량이나 가격이 맞춰지는데 이게 안되면 상당히 불리할 수 밖에 없긴 하겠네요. 찾아보니 모노컬처 자체가 식민지 착취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수리시설 공사는 일제의 농업 진흥 정책의 일환이었는데 공사 규모가 상당하고 민간 자본 위주로 시행했다는데, 여기서 또 농민들 돈이 빠졌나봅니다.



3. 조선총독부는 오히려 조선을 개발한다면서 일본 정부의 돈을 뜯어갔다.

  이게 피상적으로 알면 수탈론 주장하기 힘든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문제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공업엔 투자를 제대로 안 하고 철도나 농업(산미증식) 위주로  돈을 썼습니다.


  (추가3) 이걸 드러내기 위해 저자는 조선총독부의 세출을 찾고 이 중 토목건설 등의 항목을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환산하여 합산, 그리고 토목건축협회?(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의 매출과 비교했습니다. 그러면 협회의 매출은 총독부의 인프라 투자의 60% 이상으로 나옵니다. 저자는 총독부의 사전답사, 조사, 계획 등의 비용은 상인의 매출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과 일정 금액 이하의 공사는 매출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꽤 메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일제시대의 토목건축업은 대체로 공공사업에서 돈을 벌었으며, 그 공공사업 중에서도 철도에 주로 쓰였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 정부의 인프라 투자는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쓰이기 위한 인프라(교통, 덤으로 쌀)에 대부분 쓰였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신민지 근대화론의 일본의 투자로 조선의 인프라가 성장했다에 대한 반박으로도 기능하는 걸로 보입니다.



4. 어째서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훨씬 잘 살았나? 저자는 제도적으로 일본인에게 훨씬 유리했던 게 문제라는 것 같습니다.

  ① 은행이 조선인에게 대출을 안 준다 → 일본인이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리고 조선인에게 높은 이자로 빌려준다.

  ② 공공사업을 공개적으로 입찰(경쟁)시키는 회계법이 생기자 → 대학 n년차 등 실력이 인정된 사람이 있어야 토목건축업을 할 수 있는 제도 + 한 번 계약을 성공했으면 계약 우대

  이건 일본 내부에는 도입하지 않은 제도라는데 대학교가 부실하고 근대화가 부족한 한국에서 시행했다는 점에서 의도가 투명하죠. 이 당시 사람들 서신이나 뉴스를 보면 토목건축 청부업자 인식이 관리에 비해 꽤 낮았던 걸로 예상되는데, 일본인 관리가 일 그만두고 청부업에 뛰어들기도 했을 정도로 돈을 잘 벌고 일본인끼리의 정경 유착도 심했다고 합니다.

  ③ 이런 식으로 얼핏보면 공평하지만 실제론 조선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숨겨져 있다네요. 그래도 이런 악조건에도 조선인 토목건축업자는 극소수지만 있었고 돈도  꽤 벌었습니다.



5. 의외의 일본인?들

  토목건축 업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에도 불구하고 대구 등 몇 곳은 공개입찰을 고수하여 조선인 업자가 몰려들었다. 이런 지역에서 일본인 업자들 담합했다가 걸려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추가4) <일제강점기 대구의 토목건축청부업자에 관한 연구>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094971)에도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한 일부지역에서는 일반경쟁 입찰원칙이 두드러지게 시도되어'라며 관련 내용이 있습니다. 이거 보고 기억났는데, 이 때 걸린 담합 때문에 정부가 지명해서 계약하는 수의계약 위주로 바뀌었고 조선인 청부업자에게 불리해졌다는 내용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조선의 공업을 키워야한다고 인식한 은근히 높은 일본인들이  있었다. 예를들어 40년대 초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부총독)이 조선 공업을 진흥시키고 싶어하는 어떤 일본인(?)과의 대화에서 '조선의 공업을 키워야 제대로 발전할 수 있는데 일본 재벌과 내각에서 반대한다, 산미증식을 위해 곧 4억엔 들여오는데 이걸 조선 밖(일본인?)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여 공업을 일으킬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달라' 정도의 말을 합니다.


참고 사항

  저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이며, 대구카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입니다.

  이 책은 2020년 세종도서로 지정되었으며, 연합뉴스 한겨례 동아일보 등 여러 성향의 언론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실증적 비판적으로 고찰한다고 소개되었습니다.




#소셜임팩트챌린지 #스토브인디와희망을 #플로리스다크니스 #희망스튜디오

17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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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F
24.01.1324.01.13 23:37 -00:00


Sojeob
24.01.1324.01.13 18:53 -00:00


SinsKai
24.01.1324.01.13 18:13 -00:00


고요한바위
24.01.1324.01.13 17:24 -00:00

뉴라이트가 서울대에도 있기에 저자가 서울대라고 객관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STOVE40157233
24.01.1324.01.13 17:35 -00:00
작성자

최재성. (2019). 일본인 학자, 한국의 뉴라이트를 겨누다 -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 도리우미 유타카, 지식산업사, 2019. 동북아역사논총,(66), 257-270.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292121


제가 제대로 댓글을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이 책은 뉴라이트를 비판하는 책입니다.

고요한바위
24.01.1324.01.13 17:36 -00:00

비판하고 있지만 조선 총독부하 기록을 바탕으로 수탈 정도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STOVE40157233
24.01.1324.01.13 18:00 -00:00
작성자

그런 판단을 내린 근거로 책을 비판하는 전문가의 글이라도 있습니까? 일단 DBpia의 글에서 지적하는 한계는 1. 조선인 수탈자를 고려하지 못함과 2. 비판의 범위가 협소하다(토목청부업 위주)만 있고 수탈을 축소했다는 얘기는 안 보입니다.

고요한바위
24.01.1324.01.13 17:23 -00:00

가장 큰 전주(田主)는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였다. 토지조사사업이 끝날 무렵인 1918년께 동양척식회사의 토지는 설립 당시의 1만7000여 정보에서 7만4000여 정보로 4배 이상 늘었으며, 지배하는 전호(佃戶)가 15만여 명에 달했다. 토지조사 사업에는 지세(地稅) 수입을 늘리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 결과 과세지 총면적이 424만9000여 정보로서 종래의 286만7000여 정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났고, 지세는 내국세 총액의 약 40%에 달하게 되었다. 일제는 토지조사 사업으로 조선총독부의 재산을 대거 늘리고 세입도 대폭 확충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토지조사 사업이 끝난 이듬해 전 민족적인 3·1운동이 일어났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일제의 폭력적인 토지수탈 사업에 대한 전 민족적 반감이 팽배했고, 이것은 3·1운동에 일반 민중이 대거 참가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고요한바위
24.01.1324.01.13 17:23 -00:00

양반 사대부들도 토지를 빼앗기는 판국이니 일반 상민들이야 말할 것이 없었다. 소유지의 사방에 세우는 푯말이 사표(四標)로서 이른바 ‘총독부 말뚝’이었다. 면장·이장 등의 입회 아래 토지를 답사해서 사방에 세워야 했는데, 친일 모리배가 사표를 세웠는데 항의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대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그래서 대일 항쟁기 때 ‘총독부 말뚝’이란 용어는 무리하게 남의 것을 차지하려는 욕심 많은 자들에 대한 야유로 널리 사용되었다. 근대적 토지 소유권 제도를 확립한다는 이 사업 과정에서 황실·관청 소유 토지는 물론 신고에서 누락된 토지, 수조권은 국가에 있었지만 사실상 개인 소유였던 토지들이 대부분 조선총독부로 넘어갔다. 관습적 소유관계와 마을 공동 산이 많았던 임야의 경우 더욱 넓은 면적이 조선총독부로 넘어갔다.

1918년 11월 2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의 성대한 종료식(終了式)을 거행했는데, 이 사업으로 조선총독부가 차지한 토지와 임야가 전 국토의 4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였다. 9만9400여 건의 토지소유권 분쟁 중 65%에 달하는 6만4500여 건이 국유지에서 발생했다. 조상 전래로 내려온 사유지를 국유지로 편입시켰기 때문이었다.

토지조사 사업을 거치며 많은 자작농이 전호(佃戶: 소작농)로 전락했다. 토지조사 사업 결과 자가(自家) 경작과 전작(佃作)을 겸하는 반전호(半佃戶) 농가, 순수한 전호(佃戶)를 합친 비율이 전체 농가의 77%에 달했다. 약 3%에 불과한 전주(田主)층이 77%의 전호(佃戶)를 지배하는 수탈 농업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었다.

고요한바위
24.01.1324.01.13 17:22 -00:00

https://www.joongang.co.kr/article/6266327#home

총독부, 토지조사 ‘함정’ 파놓고 한반도 땅 40% 약탈

STOVE40157233
24.01.1324.01.13 17:38 -00:00
작성자

흥미롭네요.

고요한바위
24.01.1324.01.13 17:39 -00:00

처음 들었다구요? 뉴라이트 계열 자료만 보신건지요?

STOVE40157233
24.01.1324.01.13 17:50 -00:00
작성자

일제시대 관련된 역사책은 거의 읽은 적이 없습니다. 초중고 한국사 교육 조금 받았고, 책은 제목은 기억 안 나는데 1905~1945년의 여러 사건 시간 순으로 나열한 거 최근에 하나 읽은 적 있군요.

고요한바위
24.01.1324.01.13 17:19 -00:00

저자와 기자의 인터뷰 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PRINT/911267.html


이들 일본 사업주는 조선인들에게 임금 지급도 당시 신고 가격의 3분의 1 수준으로 후려쳤다. 총독부의 통계연보에는 조선인 노동자의 일당이 일본 노동자의 절반인 1엔이라고 적혀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30~40전, 심지어는 20~30전만 지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실질 임금은 도리우미 박사가 일본 청부업자들의 회고록 등 생생한 자료를 뒤져서 찾아낸 성과다. 그러한 불공정, 편법을 식민지 당국이 방관하고 조장했기에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식민지 시기는 조선에 대한 일제의 착취이자 수탈이 이뤄진 때라는 것이다.


- 저자도 여러 형태의 수탈이 이뤄졌다고 말하고 있구요. 식민지 국민을 가미가제, 위안부로 데려간 나라가 잘도 공정을 지켰겠네요. 그리고 조선 총독부 하의 토지 대장은 얼마든지 위조 될 수 있는 사안인데 그걸 온전히 믿는 것도 참 순진한 발상 같습니다.


STOVE40157233
24.01.1324.01.13 17:36 -00:00
작성자

수탈이 아니라 경제적 거래다는 부분은 제가 잘못 기억한 거였습니다. 비판 대상이었는데, 위의 DBpia의 글을 보니 기억이 나네요.


임금쪽은 제가 아직 읽지 않은 3장에 나와있나봅니다.

배두나
24.01.1324.01.13 14:45 -00:00

제가 배운 바로는 토지조사사업때 수조권은 국가에 있지만  실제로는 경작자가 대대로 세습받는 민전을 왕실과 관청에 세를 내기 때문에 국유지다. 이런식으로 토지 수탈한 것으로 아는데요. 저도 혹시 싶어서 나무위키 찾아보니 밑 항목에 그대로 나와있네요. 토지 수탈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그래서 소작농으로 전락한 자작농이 많았던 것도 기록으로 남아있죠

STOVE40157233
24.01.1324.01.13 15:29 -00:00
작성자

그런 부분은 책에서 못 본 것 같은데 신고 미비로 인한게 아니라 제도 변경? 같은 거니까 결이 좀 다르긴 하죠. 그런 토지가 적거나 주장 전개를 위해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미비점은 다른 책에서 알게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